날짜: 2026. 03. 15 | 글: 작가 노아
1. 10D와의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사진을 시작한 지 어느덧 9년이 흘렀습니다. 제 사진 인생의 시작은 제가 존경하는 사진작가이자 목사님께서 건네주셨던 'Canon EOS 10D'였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사진이 좋아서, 누군가에게 빌려온 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에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만의 카메라'였습니다.
타인의 손때가 묻은 장비가 아닌, 오롯이 내 이름으로 박스를 개봉하고 첫 셔터를 누를 수 있는 그런 존재. 9년이라는 긴 인내의 시간 끝에 드디어 중고 거래를 통해 EOS R을 영입했습니다. 비록 최신 기종은 아닐지 몰라도 저에게는 그 어떤 명기보다 값진 보물이었습니다. 카메라 바디를 손에 쥔 날, 마치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2. 현실적인 선택, EF 17-40mm 렌즈와의 만남
카메라 바디를 구매하고 나니 렌즈가 문제였습니다. 사실 RF 렌즈의 화려한 화질을 경험하고 싶었지만, 바디를 사고 남은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사진작가로서 완벽한 장비를 갖추고 싶은 욕심은 컸지만,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EF-RF 어댑터를 활용한 EF 17-40mm f/4L USM 렌즈를 선택했습니다.
광각 렌즈 특유의 시원한 화각이 주는 매력, 그리고 비록 올드 렌즈지만 L렌즈만이 주는 신뢰감을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부푼 마음으로 출사 가방을 챙기며 렌즈 캡을 닫을 때, 손끝에 전해지는 무게감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서울의 역사가 숨 쉬는 곳, 동묘였습니다.

3. 동묘의 골목, 무엇을 담을 것인가
첫 출사 장소인 동묘에 도착했을 때 저를 반긴 것은 엄청난 인파와 어지러운 거리의 풍경이었습니다. 광각 렌즈를 통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시끌벅적한 메인 거리를 벗어나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벽과 낡은 셔터들 사이에서 비로소 제 시선이 머무는 곳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EOS R의 셔터를 조심스럽게 눌렀습니다. 10D의 묵직한 진동과는 전혀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기계음이 골목에 울려 퍼졌습니다. 생각보다 17mm라는 광각의 세계는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불필요한 정보들이 프레임 안에 너무 많이 들어왔고, 렌즈를 휘두를 때마다 왜곡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수백 장을 찍었지만, 결국 간신히 마음을 담은 사진 3장만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서툰 첫발, 하지만 기분 좋은 설렘
복잡한 서울 한복판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는 것이 아직은 참 어렵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9년이라는 사진 경력이 무색할 만큼, 제 이름으로 된 장비 앞에서는 다시 초보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이 서툰 발걸음이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록입니다.
지금은 비록 적응하기 힘든 렌즈와 씨름하고 있지만, 다음 출사 때는 조금 더 괜찮아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9년 전 목사님께 처음 10D를 건네받았을 때의 그 설레는 초심으로 돌아가, 저만의 시선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아나가겠습니다. 다음 출사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